이제는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게임 디자인의 방식을 바꾸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넥슨코리아 '한재민' 기획자는 이런 흐름 속에서 AI를 활용한 캐릭터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세션을 시작했다. '38만년을 1주로?' 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이번 세션은 주로 캐릭터 디자인과 밸런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재민 기획자는 여러 프로젝트를 거쳐 현재는 아스가르드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오늘 세션에서는 지난 2022년 글로벌 시장에 소프트런칭한 수집형 RPG '아르젠트 트와일라잇'의 사례를 발표햇다. 해당 게임은 300종이 넘는 캐릭터를 활용하는 수집형 RPG로, 캐릭터 밸런스 조정에 AI기술을 활용했다.
캐릭터 수집형 게임의 핵심은 유저가 갖고 싶어 할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이 매력은 외형이나 설정 같은 비전투 요소와 스탯, 스킬 같은 전투 요소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전투가 중요한 게임에서는 성능을 통해 캐릭터 매력을 어필해야 한다. '아르젠트 트와일라잇'도 이런 사례다.
수집형 게임의 전투는 다양한 캐릭터를 조합해 시너지를 만드는 형태다. 그렇기에 캐릭터 조합간 시너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밸런스가 문제가 된다. 밸런스를 맞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조합을 테스트해보는 일이지만 그러기에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또한, 수집형 게임은 다양한 기믹과 성장이 존재한다. 이런 조건이 독립적으로 작용하면 검증해야할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아르젠트 트와일라잇'에서는 약 200억개 조합이 나오는데, 한 조합에 1분이 걸린다고 쳐도 총 38만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개발 단계에서 모든 내용을 검증하기는 어렵다. 결국은 기획자의 직감으로 밸런싱을 하게 되고, 라이브 서비스에 돌입하면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반면, 수많은 경우의 수를 찾고 검증하는 건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AI를 통한 시뮬레이션으로 단순 반복 작업을 대체하고, 시뮬레이션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머신 20대를 사용한 병렬 처리 환경을 구성했다. 이렇게 해서 시간을 4.8년으로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4.8년도 여전히 너무 긴 시간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조합을 검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한 한재민 기획자는 테스트 기간을 더 단축하기 위해 '의미 있는 조합'을 선별하는 알고리즘을 추가했다. 실제로도 1성 캐릭터로만 구성된 조합 등은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테스트에 걸리는 시간을 일주일까지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중요한 것은 시뮬레이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테스트 결과는 전투별 클리어 타임, 승률, 대미지 등 온갖 데이터가 테이블 형태로 남는데, 이를 콘텐츠별 캐릭터 활용도나 밸런스 검증에 어떻게 활용할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에 한재민 기획자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캐릭터 성능을 점수로 환산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승리 조합에 많이 포함된 캐릭터, 조합의 승률이 높은 캐릭터, 클리어 타임이 빠른 캐릭터 등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해 캐릭터별 역할을 정의하고 기여도에 따른 점수를 부여했다. 특히 이 점수는 실제 성능과 유의미한 상관 관계를 갖도록 하는 설계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전체 캐릭터의 점수를 계산해내고, 캐릭터가 기획 의도에 맞는 성능을 보이는지를 효과적으로 검증할 수 있었다. 이 데이터는 밸런스 조정의 객관적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상 밸런스 탐지 목적으로도 유용했다. 실제로 특정 캐릭터의 지표가 갑자기 돌출되는 상황이 발생해 확인해보니, 값이 잘못 입력되었다는 사실을 미리 발견할 수 있었다.
발표를 마친 한재민 기획자는 '시뮬레이션은 결과보다 해석이 중요하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시뮬레이션 결과가 반드시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AI는 어디까지나 보조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최종적인 판단은 결국 사람의 몫이며, 이를 위해서는 게임에 대한 높은 이해가 요구된다. 그리고 개선 사항이 실제 경험에서 체감되어야 한다. 이것이 밸런스 기획자의 역량이다.
캐릭터 밸런스의 목적은 모든 캐릭터가 동일한 성능을 내도록 만드는 게 아니다. 명확한 의도와 목적을 가진 설계가 필요하며, 게임을 장기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지속가능성과 게임에서 제공하는 즉각적인 체감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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