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배틀그라운드>로 명성을 떨친 ‘크래프톤’의 신작 모바일 게임 <디펜스 더비>가 정식 출시됐다.
<디펜스 더비>는 방어 시설을 설치해 몰려오는 적을 막아내는 일명 ‘타워 디펜스’라 불리는 장르의 게임이다. 과거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를 유즈맵을 즐겼던 유저라면, 게임의 규칙을 확인한 순간 ‘경매 디펜스’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디펜스에 ‘경매’라는 요소를 도입한, 당시로서는 제법 참신한 장르로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는 해도 경매 디펜스와는 제법 차이가 있다. 게임의 최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경매’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디펜스 더비>의 메인은 ‘디펜스’가 아니라 경매다. 그것이 며칠 간의 체험 결과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 처음에는 단순한 타워 디펜스인줄 알았으나…
필자가 체험 기간에 플레이할 수 있었던 콘텐츠는 ‘더비 모드’, ‘돌파 모드’, ‘시련의 협곡’, ‘친선전’ 이렇게 네 종류였으며, 준비 중인 콘텐츠로 ‘테마 모드’, ‘시련의 협곡’ 등이 있었다.
이 게임의 메인 콘텐츠는 더비 모드다. 사실상 나머지는 육성 재료를 모으기 위한 PvE 콘텐츠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자잘한 추가 규칙(제공되는 덱을 사용해야 한다거나, 종족 제한이 있다거나 하는 등)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게임 방식은 더비 모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필자는 체험 기간에 더비 모드를 중점적으로 플레이했음을 미리 밝힌다.
더비 모드는 4명의 유저가 실시간으로 실력을 겨루는 PvP 모드다. 단, PvP라고 해도 다른 유저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수단은 제공되지 않는다. 그저 몰려오는 몬스터 웨이브를 최대한 오래 버텨내는 것이 전부다.
▲ 몬스터 웨이브를 가장 오래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디펜스 더비>의 규칙이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유닛을 배치할 수 있는 자리는 중앙의 9칸뿐이며, 맵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몬스터가 이동하는 경로도 매번 동일하다. 유닛의 종족이나 속성을 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긴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전략의 깊이가 충분히 가미되지 않는다.
과연 이 단순한 게임의 어디에 치열한 전략과 수 싸움이 있다는 건가? 그냥 좋은 유닛을 낙찰받아서 적당히 배치해 두면 끝이 아닌가? 심지어 이 게임에는 유닛 뽑기와 육성의 개념도 존재하는데, 그렇다면 과금을 많이 한 유저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 아닌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필자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 게임의 진면목을 체감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서두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중요한 내용이니 한 번 더 강조하겠다. 단언컨대 <디펜스 더비>의 메인은 디펜스가 아니라 경매다. 개발사에서 말한 치열한 심리전과 전략은 분명 이 게임에 녹아들어 있었다. 다만, 그 장소가 디펜스가 아닌 경매였을 뿐.
▲ 이 게임의 메인은 디펜스가 아니다. 경매다!
처음에는 이 경매를 ‘필요한 유닛을 가져오기 위한 가벼운 눈치 싸움’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그리고 더 높은 랭킹으로 올라갈수록 경매를 통해 이루어지는 머리싸움이 점점 치열해진다.
단순히 필요한 유닛을 가져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가져오는 것은 기본이고, 일부러 상대의 코인을 소비시켜서 코인의 우위를 유지하거나 상대에게 꼭 필요한 유닛을 대신 낙찰받아 빼앗아 오는 등 어떻게 코인을 사용할지를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또한, 낙찰에 실패한 유저들은 입찰 가격이 높은 순으로 보너스 코인을 지급받는다. 그렇기에 경매에 등장한 유닛이 필요 없다 하더라도 경매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2위나 3위를 노리기 위한 입찰을 해야 한다. 참여자 전원이 항상 진지하게 경매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 필요없는 유닛이 나왔다면? 일부러 2, 3등을 노려야 한다.
그나마 4명이 남아 있을 때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2명이 탈락하고 1:1 상황이 되면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이쯤 되면 얼추 필요한 유닛 조합은 완성되어 있겠지만, 대신 몰려오는 몬스터도 상당히 강해진다. 여기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바로 유닛의 ‘합성’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모든 유닛은 기본 1성으로 시작되며, 동일한 유닛끼리 합쳐서 최대 3성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 성급이 올라가면 유닛의 성능도 대폭 상승하는데 1성과 2성, 2성과 3성의 공격력 차이가 거의 2~3배 수준이다.
이때부터는 코인 관리의 중요도가 대폭 상승한다. 한정된 코인으로 내게 필요한 유닛을 가져오고, 상대에게 필수적인 유닛은 빼앗아 오고, 그러면서도 무턱대고 많은 코인을 지출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 내가 가진 코인의 수가 적다는 것은 곧 상대가 필요한 유닛을 싸게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같은 금액을 입찰해서 유닛을 가져오는 동시에 상대의 코인을 소진시킨다.
그러면 그 다음 경매에서 필요한 유닛을 아주 싸게 가져올 수 있다.
여기까지 왔을 때 필자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디펜스 모드가 이토록 단순하게 구성된 것인지를.
그 이유는 바로 정보를 계속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매가 진행되는 시간은 단 10초뿐이지만, 판단을 위한 정보는 디펜스 단계에서 미리 제공된다. 상대가 보유한 유닛과 성급, 남은 HP, 다음 경매에 등장할 유닛까지.
즉, 디펜스 단계에서는 몰려오는 몬스터를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주어진 정보를 정리하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말하자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 디펜스 모드가 단순한 이유는 바로 이 생각할 시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만약 디펜스 모드가 여타 디펜스 게임들처럼 복잡했다면, 오히려 경매의 깊이가 반감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주어지는 정보를 파악해서 전략을 짜야한다.
이렇듯 디펜스 더비의 첫인상은 반가우면서도 신선했다. 도중에는 너무 단순하고 깊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익숙해진 후에는 경매가 안겨주는 짜릿한 심리전의 맛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물론, 디펜스 더비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PvE 콘텐츠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PvP. 짜릿한 심리전. 이것은 곧 플레이에 따른 피로도가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머리를 많이 써야 하니까. 당연히 숨 돌릴 곳이 필요하다. 필자는 PvE 콘텐츠에 이 역할을 기대했다. 그러나 디펜스 더비에서 제공하는 PvE는 단순히 PvP를 위한 밑 작업에 불과했고 타워 디펜스로서의 만족감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 PvP는 재밌지만, PvE는 글쎄?
타워 디펜스와 PvP. 가만 생각해 보면 참으로 상반되는 조합이다. 본디 타워 디펜스는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게임’에 해당하는 장르다. 플래시 게임 시절에 유행하던 각종 타워 디펜스들.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식물 vs 좀비와 킹덤 러쉬 등. 세월이 흐르며 타워 디펜스라는 장르에도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긴 했으나 ‘단순함’이라는 핵심만큼은 계속 이어져왔다. 그것이야말로 이 장르의 최대 장점이자 아이덴티티나 마찬가지니까.
디펜스 더비는 그것을 버렸다. 게임의 구조는 단순할지언정 유저의 플레이 방식까지 단순해지지는 않는다. 상대는 손쉽게 승리를 안겨주는 AI가 아니라, 나에게서 승리를 쟁취하고자 전력을 다하는 또 다른 유저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타워 디펜스란 곧 단순함이 매력인 장르다. 그렇기에 디펜스 더비에서 단순함을 찾는 이가 비단 필자 한 명만은 아닐 것이다. PvP와 단순함을 접목하기 어렵다면, PvP가 아닌 콘텐츠를 따로 제공하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준비가 부족했거나, 다소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주력 콘텐츠인 실시간 PvP 하나에 유저를 집중시키겠다는 의도일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디펜스 더비는 2022년부터 사전 테스트를 진행했으며 이미 6개국에 소프트 론칭을 한 상태이기에 준비 부족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 치열한 심리전. 그 끝에 거머쥐는 승리의 짜릿함.
그것이 어디까지 먹힐지가 관건일 것이다.
디펜스 더비의 결과가 그저 도전적일 뿐이었던 시도로 끝날지, 새로운 장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이 게임이 나름의 매력과 재미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타워 디펜스 본연으로서의 재미와는 동떨어진 형태라 할지라도, 본디 새로운 도전이란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슈팅 게임의 틀을 취하면서 배틀 로얄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형태를 선도한 배틀그라운드처럼, 디펜스 더비도 ‘배팅 로얄’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선도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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