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 레이더스>의 2차 테크니컬 테스트가 동시 접속자 2만 명을 돌파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아크 레이더스>는 넥슨의 자회사 엠바크 스튜디오에서 개발 및 서비스를 담당하는 3인칭 PvPvE 익스트랙션 슈터로, 정체불명의 위협 ‘아크’에 의해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다.
이번 2차 테스트에서는 <아크 레이더스>의 정체성을 한층 뚜렷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도입됐다. 먼저 지상 파트는 새로운 아크와 각종 파밍 요소 추가를 추가해 익스트랙션 플레이를 강화했다. 거점으로 활용되던 지하 파트는 <아크 레이더스> 세계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퀘스트 시스템과 함께 스킬 트리, 마스터리 등의 육성 요소를 더했다.
▲ ‘스킬 트리’ 시스템으로 플레이 스타일에 소소한 변화가 생긴다
▲ ‘마스터리’는 일종의 도전 과제로 달성 시 제법 괜찮은 보상이 지급된다
▲ ‘퀘스트’ 는 아직 투박하지만 대략적인 분위기는 알 수 있다
기본적인 플레이 구조는 1차 테스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장르 안에서 <아크 레이더스>가 갖는 정체성은 한층 뚜렸해졌다. 필자의 기준에서 보자면 ‘쉬운 익스트랙션 슈터’ 혹은 ‘초식 게이머를 위한 익스트랙션 슈터’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익스트랙션 슈터는 장르 특성상 경쟁이 필연적이다. 물론 경쟁을 피해 갈 방법도 없진 않다. 그러나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다는 긴장감만큼은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동반되기 마련이며, 그런 리스크에서 오는 긴장감과 몰입감이야말로 이 장르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층이 비교적 하드하고, 게임 시스템 또한 그런 플레이어의 성향에 맞춰 깊이 있게 짜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크 레이더스>는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듯 보였다. 테스트에 참여하는 동안 요소요소에서 대중적인 입맛에 맞추려는 흔적을 엿볼 수 있었던 것.
우선 장비 구조가 무척 간단하다. 무기와 실드 단 두 종류뿐이다. 피로, 갈증, 허기 등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하는 요소는 일절 없다. 파밍도 마찬가지다. 전장에서 얻는 재료들은 실제 크기와 관계없이 모두 가방 1칸에 수납되며 같은 종류끼리는 겹쳐지기도 한다. 1인칭이 아닌 3인칭 시점을 채택했다는 점도 게임을 캐주얼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처럼 <아크 레이더스>는 장르의 뼈대를 제외한 다른 복잡한 요소를 과감히 덜어냈다.
▲ 인벤토리 구성이 단촐하다
장비는 무기 2개와 실드 1개가 전부다
처음에는 ‘구조가 단순한 만큼 쉽게 질리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기우였다. 단순한 구조에서 오는 편의성을 최대한 챙기면서 그 외의 요소를 통해 몰입감을 높이고 플레이에 변주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종말 이후 미래의 모습을 담아낸 전장의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옛 문명의 흔적은 고요하고 쓸쓸하며, 인간이 사라진 지상을 떠도는 아크의 불빛과 기계음은 불안감을 자극한다. 그러나 마냥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상은 대체로 밝은 환경인 데다 일출 등의 광원을 절묘하게 활용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나아가는 듯한 인상을 연출한다.
지하 세계 ‘스페란자’의 분위기도 이와 비슷하다. 지상에서 쫓겨나 어두운 지하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묘하게 활기를 띠고 있다. 지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격 연출 또한 마찬가지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는 듯한 암울한 느낌은 전혀 없다. 격납고를 향해 어깨를 펴고 당당히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희망을 비추고, 사출 포드에 앉아 무심하게 해치를 닫는 주인공의 몸짓에서는 역전의 용사 같은 듬직함이 느껴진다.
이런 요소들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세계관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내고 더 깊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분명히 한 차례 멸망한 이후의 세계일 텐데 이 분위기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묘하게 활기가 느껴지는 지하 세계 ‘스페란자’
▲ 역전의 용사같은 캐릭터의 모습에 절로 어깨가 펴지는 기분
인류 멸망의 원인을 제공한 아크는 플레이에서도 그 위용을 과시한다. 어느 하나 쉬운 상대가 없다. 흔하게 보이는 구형 아크 ‘파이어볼’과 비행형 아크 ‘스니치’조차도 한탄창을 모두 적중시켜야만 간신히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단순히 맷집만 좋은 게 아니라 인공지능도 상당하다. 지형지물을 활용해 도망치더라도 집요하게 추적해 오고, 주변에 있는 다른 아크와 연계해서 협공을 가해오기도 한다. 그나마 쉽게 잡을 수 있는 거미형 아크 ‘틱’은 사각지대에 절묘하게 숨어있다가 덮쳐오니 사람을 아주 당황스럽게 만든다.
다만, 반드시 아크와 싸워야 하는 건 아니다. 필드 곳곳에 놓인 잔해를 통해서도 아크 부품을 수급할 수 있다. 물론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소형 아크 정도는 무난히 처치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플레이어를 지하로 돌려보낸 로켓티어 등 중형 이상의 아크부터는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다. 사냥을 위한 장비는 물론이고 대상의 약점이나 공략법을 숙지해야 한다.
▲ 가장 약한 아크조차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게다가 적은 아크뿐만이 아니다. 같은 전장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가 잠재적인 적이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다른 플레이어와의 경쟁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크 레이더스>는 여타 익스트랙션 슈터와는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가장 큰 차이는 긴 TTK(교전 시간)와 짧은 교전 거리다.
캐릭터는 실드까지 포함해 꽤나 많은 체력을 보유한다. 실드는 공격을 막아주는 일종의 보호막으로, 경량, 준중량, 중량 실드로 구분된다. 무거운 실드일수록 더 많은 공격을 막아낼 수 있지만, 그만큼 캐릭터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패널티가 있다.
기술력은 있지만 자원이 부족한 세계관을 반영한 듯 총기의 성능은 저열하다. 외형에서부터 묘하게 고철스러운 티가 팍팍 난다. 무기는 대부분 총기류이며 슈터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관단총, 산탄총, 소총, 저격총 외에 펄스건 같은 미래적인 형태의 무기도 준비돼 있는데 공통적으로 장탄량이 적고 재장전 시간이 길게 설정돼 있다.
더욱이 저격총을 제외한 다른 총기는 조준경이 없다. 저격총은 단발식인 데다 조준경 배율이 고정돼 있고 조준에 딜레이까지 있어서 활용처가 한정된다. 여기에 달리기, 구르기, 슬라이딩, 그래플링 훅 등 순간적으로 기동력을 높여주는 액션으로 인해 거리가 멀어지면 명중률은 급격히 하락한다. 이쯤 되면 노골적으로 근거리 교전을 유도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무방비 상태인 플레이어를 기습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그림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덕분에 아무것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일명 ‘의문사’, ‘노잼사’가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긴 TTK로 온갖 변수가 발생하는 전투 자체는 오히려 흥미롭다. 가젯을 활용해 주도적으로 변수를 만들어 내는 것은 물론, 소리를 듣고 몰려드는 플레이어나 아크 또한 하나의 변수로 작용한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교전에 따른 피로도가 높아지긴 했으나, 애초에 적극적인 교전을 권장하는 게임이 아닌 만큼 단점으로 꼬집기는 애매한 영역이다.
피공격자 입장에서는 하다못해 상대에게 침이라도 뱉어줄 수 있으니 지더라도 그나마 좀 덜 억울한 기분이기도 하고.
▲ 다른 플레이어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집라인으로 도망치는 중
익숙해지면 다양한 가젯을 활용하는 재미가 있다
<아크 레이더스>의 파밍 구조는 대박을 노리기보다는 꾸준함을 요구하는 속칭 ‘폐지 줍기’에 가깝다. 차곡차곡 재료를 모아서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장비를 제작하는 식이다. 작업장에서 키우는 애완 수탉 꼬꼬가 주기적으로 기본 재료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패배에서 오는 손해도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다. 물론 그것이 온갖 자원을 투입해 만든 최상급 장비라면 제법 씁쓸하겠지만,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면 잃어버린 장비는 새로 만들면 된다. 장비라고 해봐야 무기와 실드가 전부니, 복구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심지어 안전 포켓에 넣어둔 아이템은 패배하더라도 그대로 보존된다.
게다가 광대한 전장의 크기에 비해 한 세션당 참여 인원은 그리 많지 않다. 반면, 소리는 매우 선명하게 들리기에 아크나 다른 플레이어의 존재를 쉽게 인지할 수 있다. 파밍에 있어 전투가 필수적이지 않은 만큼 다른 플레이어를 피해 다니는 스텔스 플레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필자 같은 초식 플레이어에게는 그야말로 만만세인 상황이다.
▲ 장비를 잃어버리더라도 다시 만들면 된다
다만, 이런 요소는 장르의 정체성을 뒤틀어버릴 우려가 있다. 개발사의 의도야 어쨌건 익스트랙션 슈터를 표방한다면 플레이어 간의 교전이 완전히 배제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에 <아크 레이더스>는 독특한 해답을 내놓았다. 서로의 활동 영역을 간접적으로 분리해 버린 것이다. 지도에는 더 많은 자원을 제공하는 파밍 구역이 따로 표시된다. 의도는 명확하다. 공격적인 플레이어는 활동 영역을 좁혀 적극적으로 싸울 수 있도록 만들고, 수비적인 플레이어는 그런 장소를 피해서 안전하게 파밍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성취감은 이 장르의 핵심 원동력이다.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목적으로 리스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면 당연히 리턴의 성취감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아크 레이더스>는 대체 무엇으로 플레이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까?
▲ 맵을 보면 대충 어디에 사람이 몰릴지 견적이 나온다
그 해답은 아크에 있다. 익스트랙션 슈터에서 적대적 NPC는 보조적인 요소로 활용되기 마련이다. 또다른 파밍처를 제공하거나 플레이에 약간의 변주를 주는 정도? 그러나 <아크 레이더스>는 적대적 NPC인 아크를 오히려 메인 콘텐츠의 위치에 올려놓았고,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따라 점차 달라져 가는 전투 경험을 제공한다.
무서웠던 아크도 플레이어의 실력과 장비가 향상되면서 점점 싸워볼 만한 적으로 바뀌어 간다. 마주치면 도망치기 바빴던 로켓티어를 어느 순간 1:1로 잡을 수 있게 되고, 종국에는 투척물 2~3방 정도로 격추해 버리는 등 이러한 성장 체험은 RPG 혹은 루트슈터의 그것과도 유사하다.
특히 2차 테스트에서 추가된 ‘퀸’과 ‘채취기’는 레이드를 방불케 한다. 퀸은 건물 크기의 초대형 아크로 강력한 레이저, 광범위 미사일 폭격 등 위협적인 패턴으로 플레이어를 압박해 온다. 채취기는 퀸과 함께 등장하며 내부로 침입해 보안 해제에 성공하면 최상위 등급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데 이 과정이 마치 레이드 기믹을 공략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에 스킬 트리(성장), 설계도(수집), 마스터리(도전 과제)라는 요소를 통해 성취감을 높이고 동기를 부여한다. 교전에서 승리하거나 탈출에 성공했을 때의 희열이 상대적으로 약한 대신, 작지만 꾸준히 달성감을 주는 장치를 여럿 마련해 둔 셈이다.
▲ 강력한 초대형 아크 ‘퀸’
▲ 채취기는 내부로 진입해 각종 기믹을 해제하는 퍼즐 방식이다(쉽지 않음)
이처럼 <아크 레이더스>의 방향성은 PvE 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다. 여기서 플레이어의 인식과 괴리가 발생한다. 현재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장르가 포용하는 범위는 뭇 플레이어의 인식보다 훨씬 넓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도 ‘타르코프’ 외에 장르를 대표할 만한 게임이 마땅치 않기에 외부의 시선은 대체로 ‘익스트랙션 슈터 = 타르코프’인 경우가 많다.
파밍, 생존, 탈출. 여기에 PvPvE 요소가 들어가면 대체로 익스트랙션이라는 틀에 포함된다. <아크 레이더스>는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기에 분류상으로는 익스트랙션 슈터가 맞다. 다만, 비중은 반대다. 이쪽은 잠입 혹은 PvE가 메인이며, PvP는 플레이에 변수를 더하는 요인 정도로만 활용하는 듯하다. 교전을 쉽게 회피할 수 있는 게임 디자인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 넓은 전장에 비해 한 세션에 참여하는 플레이어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소리도 잘 들리기에 교전을 피해가기는 쉬운 편
작금의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이미 시장에는 장르의 원조이자 장장 8년에 걸쳐 콘텐츠를 쌓아온 ‘타르코프’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이를 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실제로도 유사한 방향성을 내세운 작품은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
그나마 ‘경쟁자를 제거하며 괴물을 사냥한다’는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운 ‘헌트 쇼다운’ 정도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례다. 그렇기에 필자는 <아크 레이더스>에서 시도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하이 리턴은 없지만 하이 리스크도 없다. 대신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면서도 PvP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플레이에 적당한 긴장감을 가미했다. 적극적으로 싸우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싸움이 아예 없는 건 심심하다고 생각하는 필자의 간사한 마음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솔직히 취향 저격이다.
이제 고작 2차 테스트를 마쳤을 뿐이니 세세한 부분은 굳이 꼬집지 않겠다. 다만, <아크 레이더스>가 현재의 방향성을 이어가겠다면 콘텐츠의 보강은 필요하다. 5일간 진행된 2차 테스트에서 이미 최종 장비를 완성하고 ‘퀸’을 처치한 플레이어가 여럿 나올 정도였으니.
어쨌건 게임은 참 재미있다. 타르코프에서 비롯되는 익스트랙션 슈터와는 다소 방향성이 다르지만, 잘 만든 게임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그 달라진 방향성도 무척 마음에 든다. 과연 <아크 레이더스>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거듭 강조하지만, 분위기가 진짜 끝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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