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개발한 게임 중 굿즈 판매를 통해 흑자를 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에서 굿즈, 음악회 등 게임 외적인 행사를 시작한 기간 자체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에, IP 사업에 대한 노하우와 인프라 모두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비스를 장기간 이어가야 하는 라이브 게임은 굿즈나 오프라인 행사를 다회차에 걸쳐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매번 유저들이 만족할 만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 어떻게 게임 외적인 분야에서 IP를 확장할 수 있었을까? 사실 시프트업 측도 초기에는 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에이전시의 말에 이끌려간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유형석’ 디렉터는 “IP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만 이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들어 캐릭터 상품 중 ‘아크릴 스탠드’는 제작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거기에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상품이기도 하다. 사업성 측면에서는 리스크가 굉장히 적기에, 굿즈 제작 제인이 가장 많이 오는 상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아크릴스탠드도 이미지와 테두리를 얼마나 밀착해서 절삭하는가, 아크릴의 투명도는 얼마나 맑게 할 것인가, 이미지는 얼마나 선명하게 들어가는가,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등 고려해야 할 조건이 많으며, 그에 따라 제작 단가도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아크릴스탠드 외에는 포토카드, 캔뱃지, 키링 등이 높은 판매량을 보인다. 그렇기에 굿즈 판매 시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할 상품군이다. 제작 기간도 그리 길지 않다. 제작 측면에서의 리스크가 낮고 제작이 쉬우며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도 니즈가 맞물리니 완벽한 상품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체 판매 상품 중 아크랠스탠드, 포토카드, 캔뱃지, 키링 등의 비율이 너무 높으면 구성이 빈약해 보인다는 문제가 생긴다. 서두에 언급한 ‘유저들이 만족할 만한 경험’과는 거리가 생겨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기 상품 외에도 데스크 패드, 음반, 티켓 등 제작 난이도가 보통 수준인 미들급 상품을 함께 배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시프트업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아크릴스탠드와 같은 필수 상품군은 전체의 절반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구성하는 게 이상적’이라는 답을 찾았다.
여기에 행사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하이라이트 상품’이 더해진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상품은 주로 같은 시기에 이슈가 있는 특정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거나 그와 관련된 테마로 상품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현재 진행중인 신세계백화점 강남 팝업스토어를 예로 들면, 리드후드 LP 턴테이블이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품목이다.
정리하자면 범용성 있는 상품을 50%, 단가가 약간 올라가지만 판매량을 갖출 수 있는 상품을 40%, 하이라이트격 상품을 10% 정도로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게임의 특수성이 부여된 상품을 미들급에 포함할 수도 있다.
굿즈 제작 시 대상 캐릭터는 주로 인기도에 비례한 누적 방식으로 선정된다. 그러나 다양한 팬층의 니즈를 맞출 수 있도록 비인기 캐릭터들에게도 어느 정도 상품이 분포될 수 있도록 신경써야 한다. 당연히 에이전시쪽은 인기 캐릭터 위주로 굿즈를 만들려고 할 테니, 이 점에 있어서도 게임사측에서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굿즈 제작 리소스도 다양하게 활용할 것을 권장한다. 종류가 다른 굿즈라도 동일한 리소스를 사용하면 희소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니케>에서는 스탠딩 일러스트, 스킬 컷신, 배틀 모션 등 다양한 리소스를 활용해서 굿즈를 제작한다. 여유가 된다면 새로운 리소스를 제작하는 것도 좋다.
IP 확장 측면에서 선보인 TCG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어떤 카드는 중국 마켓에서 1,800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작년 전시회에서는 에이전트 측의 요청을 받아 유형석 디렉터의 얼굴이 박힌 캔배지를 선보기도 했다. 해당 캔배지는 다른 필그림 니케들을 제치고 가장 빨리 품절됐다고 한다.
해외에서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할 경우에는 각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게임 외부로의 IP 확장이 가장 활발한 지역인 만큼 행사 인프라와 노하우가 잘 형성돼 있다. 따라서 IP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에이전시만 찾으면 행사 진행 자체는 몹시 수월한 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낭독회, 팬미팅, 연극 등 진행할 수 있는 행사의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의 경우 일본과 비교해서 아직까지는 노하우가 그리 많이 쌓여있지는 않다. 그래서 개발사나 IP홀더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사의 디테일보다는 볼거리와 놀거리가 많은 쪽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국은 전시, 무대 행사, 다양한 굿즈 품목을 구축하는 쪽이 좋은 반응을 얻는다.
행사 효과 자체는 상당히 우수하다. 지역간 이동 시간이 짧기에 지역적으로 꽤 넓은 범위의 유저를 모을 수 있다. 반면 게임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이지는 못한 편이기에, 일상 생활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경우 좀 더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SD 리소스를 활용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미국이나 유럽같은 서구권 국가는 오프라인 행사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축적돼있지는 않다. 땅이 넓어서 이동이 쉽지 않으니 행사 기회도 많지 않다. 따라서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있는 소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레딧이나 디스코드를 중심으로 밈을 생산하고 노는 문화가 발달해있는 만큼, 이런 놀이문화로 연결될 수 있는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이 좋은 효과를 보여준다.
최근 <니케>는 MLB 콜라보를 진행했는데, 야구 경기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된 행사지만 TV로도 중계되는 야구 특성상 현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만약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고자 한다면 게임스컴 같은 종합 게임 행사 활용을 권장한다. 그 외에는 SF 소재나 EDM 혹은 락 음악에 대한 니즈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동남아쪽은 지역별 이동이 자유롭지 않기에 국가별로 행사를 분리해서 진행해야 한다. 2차 창작 측면에서는 코스프레가 유리하다. 코스프레에 대한 시선이 상대적으로 관대하기 때문에 코스프레 모델을 활용하는 쪽에 강점이 있다. 그리고 행사 내용은 특정 테마보다는 범용성에 초첨을 맞추는 편이 유리하다.
지역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는 시점도 중요하다. <니케>의 경우 스토리 하이라이트 시점에 맞춰서 행사를 개최하는 편이다. 만약 특정 테마와 시기를 맞추기 어렵다면 좀 더 범용적인 테마로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행사 자체에 서사를 담는 것도 효과적이다. 또한, 팝업스토어에서 굿즈를 판매할 경우 효과적인 디스플레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팬서비스 측면에서의 콘텐츠 제작도 필요하다. <니케>의 경우를 예로 들면 인공위성에 영상을 띄우고, 물속에서 드로잉을 하고, 샌드 아트로 게임의 명장면을 재현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세계관이 붕괴되지 않는 선에서 코믹스나 4컷만화 등 스토리 파생 콘텐츠를 진행해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
2차 창작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현재 서브컬쳐에서 2차 창작은 곧 그 게임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로 인식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게임 외적으로 IP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이를 관리하는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IP를 관리하는 데는 굉장히 큰 수고가 들어간다.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확장에만 집중한다면, IP 자체가 붕괴하거나 행사 구성이 실망스러워질 우려가 있다.
IP 확장은 사업이기 이전에 하나의 팬서비스다. 팬과 함께 만든 추억이 곧 IP의 생명이며, 게임사는 그 기억을 존중하며 IP를 관리해야 한다. 또한, IP 확장은 소비가 아닌 생산에 초점을 둬야 한다. IP가 무분별한 마케팅 수단으로 소비되어서는 안되며, 유저들이 충분히 애정을 줄 수 있도록 그 가치를 이어가야 한다.
시프트업은 IP에 대한 애정으로 지갑을 여는 상황을 ‘Pay to Love’로 표현한다. 유형석 디렉터는 유저들이 꾸준히 IP에 대한 애정을 유하도록 만들려면 이제는 IP 매니지먼트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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