렐루게임즈 한규선 프로듀서는 'AI가 게임의 핵심 재미가 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세션을 진행했다. 렐루게임즈는 게임 개발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개발사로, AI를 단순한 개발 도구가 아닌 'AI를 사용해야만 얻을 수 있는 재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국내 게임사들이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현황을 확인해보니 주로 기술적인 측면에서 활용하는 것이 확인됐다. 렐루게임즈는 크래프톤 산하 스페셜 프로젝트2 팀에서 출발한 게임사다. 당시 게임의 핵심 재미가 딥러닝에서 나오고, 딥러닝이 없으면 안 되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렐루게임즈가 처음 접근했던 방식은 입력 도구의 변화였다. 마우스, 키보드, 게임패드 등의 입력도구를 바꾸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나의 그림에 여러 의미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첫 프로젝트는 안타깝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게임에서 스킬을 사용할 때 플레이어는 키보드나 마우스로 지정된 명령을 입력한다.
렐루게임즈는 이 과정을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 대체하고자 했다. 그러나 짧고 반복적인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피로감을 주며, 그림의 모양이 곧 스킬 효과를 의미하므로 플레이어가 이를 모두 외워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음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워캐스트라'라는 게임이 탄생했다. 해당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지휘관이 되어 음성으로 명령을 내려 미니언들을 지휘한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쓰는 게 더 편하므로,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는 행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음성으로만 가능한 게임. 그런 고민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 마법소녀)'다. 당시 아이디어를 낸 직원은 '간단한 말하기만으로 강한 자극을 얻을 수 있고, 고통인지 재미인지 분간이 안 되는 강렬한 경험으로 도파민을 분비하자'라는 발언을 던졌다고 한다.
'마법소녀'는 2024년 지스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게임은 화면에 출력된 대사를 실제로 외쳐서 상대와 대결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입력 수단에 대한 불편함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를 플레이에서 나오는 강렬한 도파민으로 덮어버린다는 과감한 발상이 제대로 먹혀들어간 셈이다.
'마법소녀' 다음으로 선보인 게임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NPC와 자유로운 대화를 한다면?'이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스모킹 건은 셜록홈즈에 등장하는 용어로 결정적 증거를 의미한다.
렐루게임즈는 단순한 NPC와의 대화가 아닌 '왜 대화를 해야 하는가'와 '어떤 대화를 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언커버 더 스모킹 건'에서 플레이어는 탐정이 되어 살인현장에서 증거와 증언을 통해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게임에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직접 채팅을 입력해 용의자를 심문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문제는 플레이어가 어떤 채팅을 입력할 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렐루게임즈는 플레이어의 채팅을 사건과 '관련 있는 정보'와 '관련 없는 정보'로 구분했다. 전자는 예측가능한 범주이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문제는 후자다. 여기서 딥러닝의 장점이 발휘된다.
챗GPT는 가끔 학습된 정보 중에서 그럴듯한 내용을 조합해 거짓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따. 이를 할루시네이션이라고 하는데, '언커버 더 스모킹 건'에서는 이를 활용해 용의자가 사건과 관계 없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도록 구성했다.
그런데 이 경우 어떤 대사가 단서인지 구분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수의 랭기지 모델을 사용했다. 한쪽은 적절한 대답을 생성하고, 다른 한쪽은 플레이어의 질문을 평가한다. 이를 통해 질문과 사건의 관련성을 평가하고, 대화에 중요한 정보가 포함돼 있을 경우 플레이어가 확인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표시해준다.
최근 렐루게임즈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라는 의문을 게임에 담아내고자 한다. 오는 3분기 출시 예정인 '미메시스'라는 작품으로, 지난 스팀 넥스트 페스트에서 4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미메시스'에서는 사람의 행동과 음성을 모방하는 NPC가 등장하는데, 행동뿐만 아니라 말투까지도 플레이어와 유사하게 구현한다. 게임은 4인 협력 플레이로 진행되는데, 함께 있는 팀원이 정말 플레이어인지를 계속 의심해야하는 과정에서 높은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다.
또다른 프로젝트로는 '스케빈저 톰'이 있다. 이는 화성 탐사 로봇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프로젝트다. 플레이어는 탐사로봇을 조종해 오염된 지상을 탐색하며 각종 자원을 수집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게임은 탐사 로봇이 보내오는 사진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어떤 자원을 수집할지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사진에 이미지 생성 AI를 사용했으며, 이를 통해 플레이어에게는 무한한 공간을 탐헌하는 듯한 재미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AI를 이용한 게임 개발 플랫폼 '도넛'을 선보였다. 이는 일론머스크가 지난 2월 공개한 '그록3'보다 더 이른 시기에 출발한 프로젝트로, 간단한 자연어 입력만으로 고양이가 우주를 뛰어다니는 플랫포머 게임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발표를 마친 한규선 프로듀서는 'AI가 만능이라는, 만능이어야 한다는 오해'를 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은 신기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신기한 것이 곧 재미있는 것은은 아니므로, 재미를 발견하는 건 게임 디자이너가 가져가야 할 영역이다.
AI가 정답을 알고 있고, 사람이 그걸 찾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AI는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 '언커버 더 스모킹 건'에서 AI가 플레이어의 질문을 평가했던 것처럼, '좋은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질문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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