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조이가 폐막(7/28)한 다음날인 월요일은 34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운 날이었다. 차이나조이 출장에서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 일부러 서울에 들려 헝그리앱을 찾았다고 했다.
유명 게임사 캡콤에서 20여년간 일했고, 지금은 폴라리스엑스(POLARIS-X)라는 게임 회사 대표를 맡고 있다는 그의 이름은 '스미다 야스히로'. 평범해 보였지만, 어딘가 독특해 보였다.
연식(?)이 오래된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연한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자신을 소개하는 그의 입에서 놀랍게도 '김봉식'이란 낯익은 이름이 흘러나왔다.
2014년 한국에서 100만 다운드로를 넘는 히트를 기록했던 '중년기사 김봉식'을 일본에 가져가 의미있는 성과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설마 김봉식이란 이름이 그대로 현지에서 쓰이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독신에 무직, 아재 용사가 던전을 탐험하는 도트그래픽의 방치형 RPG '중년기사 김봉식'의 일본 네이밍에 꽤 고심했던 눈치다.
그는 "당시 여러가지 후보가 있었지만, 뭔가 그 느낌을 전달하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내 이름 야스히로를 그냥 붙여버렸다"고 웃으며 말했다. '중년기사 김봉식'은 서비스 회사 사장의 이름을 따서 '중년기사 야스히로'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이름 '김봉식'과 평범하게 느껴지는 '야스히로' 잘 맞는 것 같았다. 당시만 해도 스미다 씨는 독신주의자였다고 하니, 미묘한 공감대가 떠오른다.
스미다 씨는 어쩌다가 낯선 한국 게임 '중년기사 김봉식'에 빠져든 걸까.
"그 당시, 대략 120개 정도의 한국 모바일게임을 검토했다. 이리저리 아무리 둘러봐도, '김봉식'만 내 눈에 들어오더라. 그야말로 한눈에 반해 버렸다"며, "가볍게 즐길 수 있지만, 뭔가 깊은 맛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만났던 마프게임즈의 김동준 대표를 천재라고 했다)
각별한 애정을 쏟은 작품인 만큼, '중년기사 야스히로'는 무기, 퀘스트명 등까지 일본 유저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용어들로 스미다 씨에 의해 꼼꼼하게 현지화됐다. 큰 박수를 받았다는 후문.
수백종의 한.일 게임들을 직접 경험한 그에게 양국 유저에 대해 물었다.
한국과 일본 유저들은 지갑을 여는 데, 큰 차이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 유저는 '넘버원'이 되고 싶어서 돈을 쓰는 반면, 일본 유저는 "온리원'이 되고 싶어서 돈을 쓴다"면서, "빨리 새로운 던전에 들어가 보고 싶어서 돈을 쓰는 한국 유저, 나만의 콜렉션을 모으고 싶어서 돈을 쓰는 일본 유저, 각각 차이가 있다"고 했다.
사소한 차이로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한국형 BM으로 일본 시장에 함부로 나가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스미다 씨가 낙점한 두번째 한국 게임은 '나날이스튜디오'의 '샐리의 법칙'이었다.
동화책 느낌의 플랫폼 게임으로 '중년기사 야스히로'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에서도 흥미로운 일화는 이어졌다.
"일본어판 '샐리의 법칙' 발매일이 12월 15일이었다. 그 날은 공교롭게도 '슈퍼마리오런'의 발매일. 워낙 화제성 있는 '슈퍼마리오런'은 스토어에서 피처드될 것이 당연했다. 그 타이밍에 맞춰 '샐리의 법칙'을 마리오런 바로 옆에 노출시켰다" 스미다 씨는 대작과 정면승부를 피하기 보다는 맞짱승부를 감행한 셈이다.
"슈퍼마리오런이 당연히 주목받았지만, (여자들은) 그 옆에 보이는 '샐리의 법칙'에도 큰 관심을 보였고, 상상 이상의 좋은 성과를 냈다"고 회고했다.
그 계기로 '샐리의 법칙'은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스미다 씨는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현지 개발사 룸식스(room6)와 의기투합해, '샐리의 법칙' 닌텐도스위치 버전도 발매했다고 한다.
▲닌텐도스위치용 '샐리의 법칙'
지금까지 7종의 모바일게임을 일본에서 서비스한 '폴라리스엑스'는 무대를 글로벌로 확장하고 있다. 한국 게임을 일본에 서비스하는 것은 물론, 일본 게임을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지역에서 서비스하는 계획이다.
룸식스의 마케팅 디렉터이기도 한 스미다 씨는 지난 4월부터 'Rogue With The Dead: 환생용병단'의 한국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아티팩트를 모아 병사들의 능력을 증진시키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던전을 여행하는 방치형 RPG로 중후한 세계관 속 도트 그래픽이 특징인 게임이다.
2022년 9월 출시 이후 글로벌 다운로드 150만을 돌파하는 등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구글 플레이 베스트 오브 어워즈 2023에서 인디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환생용병단'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환생용병단 개발을 총괄한 룸식스의 코헤이(kohei)씨는 '중년기사 야스히로'의 엄청난 매니아이다. 내로라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게임 개발에 투신한 그가 만들어낸 '환생용병단'은 '중년기사 야스히로'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스미다 씨는 지난 5월에도 일산 플레이엑스포2024에 다녀갔었다고 한다. 매력 넘치는 한국 인디게임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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