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일부터 3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서울 최대 규모의 인디 게임 축제 ‘버닝 비버 2023’이 진행됐다.
스마일게이트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국내 인디게임 개발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인디 게임 제작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리다. 행사장에서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다수의 전시작과 함께 기획전시, 무대 행사, 굿즈 스토어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제공됐다.
‘Jump Into Beaver World’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맞춘 것인지, 행사장은 ‘비버 월드’라는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듯한 콘셉트로 꾸며져 있었다. 게임에 흔히 등장하는 차원문, 포탈 등이 연상되는 통로를 넘어가니, 가장 먼저 12개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시연해 볼 수 있는 기획전시장이 나타났다.
▲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행사장 입구
기획전시장의 모습은 비교적 평범했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인디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신비로운 분위기의 통로를 지나오며 한껏 기대감을 고조시킨 결과치고는 너무 밋밋하지 않나? 이왕 방문했으니 프로토타입을 하나씩 플레이해 보긴 했으나, 잔뜩 올라갔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한 자리씩 옆으로 이동하며 게임을 플레이하던 중, 건너편으로 이동한 뒤에야 필자는 이 행사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마하니 이런 반전을 노린 건가? 기획전시장 너머에는 그야말로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 갑작스러운 분위기 반전. 순간 ‘내가 잘못 들어왔나?’ 싶었다.
통일된 구조의 부스는 깔끔하게 정돈된 인상을 안겨주었다. 단지 그뿐이었다면 ‘축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심심한 모습이었겠지. 하지만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조명에 적당한 화려함과 통일감을 더하는 네온 불빛이 어우러지니, 흥겨우면서도 난잡하지 않은 ‘보기 드문 축제의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출품된 게임의 수는 87개.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 만에 완전 제패는 힘들 듯한 숫자였다. 어쩐지 입장 티켓에 ‘3일 권’이있더라니. 실제로 3일 연속으로 행사장을 방문한 관람객도 제법 많은 듯했는데, 부스를 방문해 ‘저 또 왔어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창작자와 관람객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 모두 정말 기뻐 보였다.
게임을 끝낸 후에도 그냥 자리를 뜨지 않고 창작자와 대화를 나누는 관람객이 제법 많았다. 간단한 안부 인사나 게임에 대한 소감은 물론이고, 평소 눈여겨보던 작품이었는지 예리하면서도 정성이 가득 담긴 피드백을 전달하는 이도 있었다. 잠시 짬을 내서 창작자들끼리 의견을 공유하는 모습도 쉬이 볼 수 있었다. 이런 소통의 자리를 제공하는 것 또한 이 행사의 목적 중 하나일 것이리라.
▲ 닌자 일섬 부스, 이게 진짜 레트로 감성이지.
▲ 벨라스터 부스, 플레이를 지켜보는 창작자의 모습.
▲ KILLA 부스, 관람객과 명함을 교환하는 창작자의 모습.
행사장에 준비된 독특한 참여형 프로그램도 인상 깊었다. 부스에서 게임을 시연하거나 주어진 퀘스트를 수행하면 전용 재화 ‘골드’가 제공되고, 이 골드를 이용해 즉석 사진, 초상화, 굿즈, 뽑기 등 다양한 리워드로 교환이 가능하다. 활동 내용은 특별 제작된 사이트 ‘비버 월드’에 반영되기에, 마치 현실에서 RPG를 플레이하는 감각으로 행사를 즐길 수 있었다.
▲ 행사를 위해 제작된 사이트에 활동 내용이 연동된다.
▲ 획득한 골드는 캐리커처를 비롯한 다양한 보상으로 교환할 수 있다.
마지막 날에는 ‘스토브 인디 어워즈 2023’과 ‘비버 피처드 2.0’ 시상식이 진행됐다. 먼저 ‘스토브 인디 어워즈 2023’에서는 부스터 픽 상에 ▲‘서큐하트’, 한글화 벗 상에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 월드 와이드 부문 베스트 그래픽 상에 ▲’루미네 나이트’, 베스트 내러티브 상에 ▲’Nqc : Non Qualia Character’, 베스트 뮤직&사운드 상에 ▲‘PIO’, 베스트 챌린저 상에 ▲’키키캐키캡’이 선정됐다.
‘2023 올해의 게임 부문’에서는 ▲‘갓 오브 웨폰’ ▲’백야기담’ ▲’스태퍼 케이스’ ▲’랜덤채팅의 그녀’ ▲’그래비티 서킷’ ▲’러브인 로그인’ ▲’이모탈 라이프-신령의 밭’ ▲’리프 인 부트스트랩’ ▲’하나 님의 캡퍼스 라이프!’ ▲’아톰 RPG 트루도그라드’이 Top 10으로 선정됐으며 ▲’러브인 로그인’이 ‘올해의 게임 상’을 수상했다.
▲ 스마일게이트의 버튜버 ‘세아’가 시상식을 진행했다.
▲ 베스트 챌린저 상을 수상한 ‘키키캐키캡’.
키보드로 싸우는 독특한 방식이 재미있었다.
▲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된 ‘러브인 로그인’.
▲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한 해외 창작자들의 영상 편지.
이어서 ‘비버 피처드 2.0’ 시상식이 진행됐다. 행사에 참여한 다른 창작자들과 후원사들의 투표를 통해 총 10개팀을 선정했는데, ▲‘피그말리온’의 캔들 ▲‘킬라’의 검귤단 ▲‘산나비’의 원더포션 ▲‘래토피아’의 카셀게임즈 ▲‘카투바의 밀렵꾼’의 유영조 ▲‘세피리아’의 팀호레이 ▲‘피자뱃딧’의 조프소프트 ▲‘세트먼트 트윈스’의 흥도르흥돌 ▲‘키키캐키캡’의 이게게개임 ▲‘벨라스터’의 오디세이어가 최종적으로 선정됐다.
아무래도 행사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시상식이 그리 거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태프, 창작자, 관람객이 시상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수상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은 그 어떤 시상식보다 축제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렇다. ‘식’이 아니라 ‘축제’. 엄숙함보다는 즐거움이 우선시되는, ‘시상식’이 아닌 ‘시상축제’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 ‘스토브 인디 어워즈 2023’ 수상자들의 단체 사진.
▲ 너도 신나고, 나도 신나고, 우리 모두 신나는 ‘시상축제’의 현장.
‘버닝 비버’가 고작 2회차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3일간의 행사가 이토록 깔끔하게 진행됐다는 점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감상은 딱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게임 축제’였다. 이는 분명 인디 게임에 대한 진심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터. 지금도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대한민국 인디게임 창작자들, 그리고 그들을 후원하는 스마일게이트에 응원과 감사의 말을 전한다. 행사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버닝 비버 2024’가 기대된다.
▲ 베스트 뮤직&사운드 상을 수상한 PIO 팀.
▲ 그 사이에서 마지막까지 불태우는 관람객의 모습.
신수용 기자(ssy@smartno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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